신은주의 세상돋보기1 - 문화예술의 선진성과 후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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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의 선진성과 후진성]
거품 경제의 과속과 과잉으로 벌어진 외환위기로 1997년 IMF의 원조를 받게 되기 직전, 사업장을 정리하고 여유가 생겨서 유럽 여행을 하게 되었다. 그 전에는 업무로 밀라노와 파리를 다녀온 적은 있지만 문화예술 관람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골목골목 펼쳐지는 고색창연한 그들의 위대한 예술을 보면서 놀라웠고 많이 부러웠다. 부러워하면 지는 것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지기 싫었다. 그래서 화려하고 아름다운 궁전과 성당이 있는 도심을 벗어나 보았지만 여전히 귀족들의 아름다운 성과 우뚝 솟은 성당이 있었다. 우리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당시는 스마트 기기와 인터넷이 잘 보급되지 않아서 관광 안내 책자나 미술사 책으로 유럽의 문화예술을 공부하던 시절이었다. 낮에는 압도적인 그들의 문화예술에 충격을 받고, 저녁에 숙소로 돌아와 책을 보며 유럽과 우리나라 문화 예술을 비교하며 밤을 새웠다. “도대체, 이들이 이런 일을 하고 있을 때 우리 조상님들께서는 무엇을 하고 계셨을까?”라는 궁금증이 커져갔다. 여행을 다녀온 후, 세계와 우리나라 정치와 문화사를 비교하며 공부를 하게 되었다. 최근에, 불타버린 노트르담 대성당을 재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성당은 1163년에 착공을 해서 거의 180여 년간 시간과 물자와 온갖 예술적 재능을 총동원해서 완공했다. 12세기 말, 우리는 고려 말기였다. 지방 호족(귀족)들의 수탈로 인해서 안으로는 농민의 반란과 민란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밖으로는 몽골의 침탈이 계속되고 있었다. 왕권은 약화되고 문신은 위선적인 명분 쌓기에 매몰되고, 무신은 자기만 살겠다고 사병을 키우고 있었다. 왕조가 기울어가고 있었다. ‘권력을 탐하는 자들이 나라를 망치면 힘없는 국민이 목숨을 걸고 나라를 구한다.’는 어느 사학자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나는 시절이었다. 요즘도 그 말이 적용되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젊은 혈기로 조상님들에 대한 실망과 원망의 마음이 불끈 솟아올라왔지만 문화사와 인류학을 조금씩 공부하며, 다양한 관점에서 우리 문화와 유럽의 문화를 깊이 있게 비교할 수 있는 안목이 생겼다. 유홍준 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읽고 틈나는 대로 구석구석 답사를 다녔다. 우리 문화예술에 대한 구겨지고 쪼그라든 자존감을 회복하게 되었고, 우리 문화예술의 선진성에 대한 자랑스러운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 ‘선진성’이란 문물이 아니라 그 문물에 담긴 정신적 선진정, 문화적 선진성이다. 정신의 선진성이란 사람, 백성, 서로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을 바탕으로 하는 이해와 배려로 형성된다. 소수 권력 집단의 신념을 강요하고 지배력을 과시하기 위해 사람을 이용하거나 희생시키지 않는 것이 선진성이다. 선진성은 말로만 부르짖는 그럴듯한 캐치프레이즈가 아니다. 몸으로 행동으로 보여 증명하는 것이 선진성이다.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신 구세주께서 자신의 업적이나 위대함을 기리기 위해 그 많은 탈취와 희생으로 세워진 성당을 과연 즐겨 받으셨을까? ‘필요 없다!’하시지 않을까? 그런 건축물이 없어도 구세주는 위대한 신이시고, 왕은 종의 모습으로 백성을 섬겨도 여전히 훌륭한 왕이다. 우리의 선조들의 왕궁은 높지도 화려하지도 않고 멋진 예술작품으로 채워지지도 않았지만 권력에 대한 절제의 미덕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권력을 자랑하고 남용하여 천박으로 흐르는 극도의 사치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잔인한 수탈의 흔적도 보이지 않고 희생의 피 냄새도 나지 않는다. 문화적 선진성이란 문화 공동체와 그 구성원에 대한 바른 이해와 따뜻한 배려와 관용에서 시작된다. 반대로 공동체 구성원을 자기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취급하며, 이기적인 숨은 의도를 화려함으로 포장하는 것이 문화적 후진성이다. 권력과 부를 세력 화장을 위해 마구잡이로 휘두르고 더 나아가 불법을 자행하고 숨기려다가 들통이 나면 발뺌하고 심지어 미화하는 행태는 양심이 싹트기 이전의 동물의 상태로 되돌리는 인류학적 후진성이다.
지난여름 유럽의 발칸의 문화예술을 둘러보았다. 호화스러운 권력자들의 궁전과 예배당을 보면서 ‘이 건물을 건립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백성들의 삶이 궁핍해졌으며,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골병이 들었으며 사고로 목숨을 잃어야했을까? 신과 권력자가 사라진 자리에 오직 종교와 권력의 그림자만이 백성의 굶주림과 희생 위에 홀로 빛나는구나!’라는 생각에 허탄함이 느껴졌다. 유럽 문화예술의 미학적 예술사적 가치가 어떠하든지 간에, 더 이상 감탄하지 않게 되었다. 그 그림자 앞에 서면 언제나 이 화려한 건축, 우리가 문화예술이라 칭송하는 것들을 위해서 희생당한 힘없는 백성들과 노동자들에게 위로의 묵념을 올리는 습관이 들었다. 물론 그런 대 역사를 통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사람들도 있고, 이름을 떨친 사람도 있지만, 그 바탕에는 그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문화예술의 선진성은 어떤 희생이나 강요 위에 성립된 물적 증표에 있지 않음을 현대 예술은 증명하고 있다.
누군가는 말한다. 평택에는 지역을 대표할 만한 세계적인 걸출한 예술가도 없고 남겨진 유명한 문화유산이 빈약하다고. 평택의 문화예술과 예술가들을 폄훼하는 말처럼 들리지만 사실일 수 있다. 왜 그럴까? 걸출한 예술가는 자연처럼 그냥 저절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문화적 예술적 토양이 갖추어져야 그 싹이 발아하고 성장하여 열매를 맺는다. 과거 유럽의 정치와 종교 권력자들의 필요는 적절한 예술적 토양으로 작용했다. 평택은 예술이라는 정신성의 표현에 전념해야할 절실함이 약했을지도 모른다. 과거의 평택 사람들은 내륙에서는 농업을, 서해안에서는 어업을 기반으로 생계를 꾸리며 정치와 종교 권력과 거리를 두고 소박하게 살아왔다. 그 소박함이 만들어낸 삶의 가치를 담아낸 문화예술이 곳곳에 있을 것이다. 크고 화려한 것들에 현혹당하여 편향된 안목이 그 소박한 아름다움의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근래에 평택은 자동차, 반도체 그리고 미군이 유입되면서 급격한 양적 확장을 하고 있다. 양적 물적 확장에서 간과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정신적 가치의 빈곤이다. 현대의 예술적 토양은 사회, 즉 공동체의 정신적 필요다. 정신문화의 빈곤은 곧바로 후진성으로 연결된다. 공동체의 정체성을 선진적으로 확립해 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문화예술의 활성화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고 이해하고 소통하는 문화예술의 토양이 비옥하게 구축되지 못한다면, 물적 풍요와 편의를 확보한다고 해도 정신적 빈곤이 만들어내는 후진성은 극복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내적 갈등과 단절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 10년, 20년 후, 평택에서 세계를 아우르는 걸출한 예술가들이 출현하려면 문화예술의 활성화를 통한 정신문화의 선진화가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신은주 : 아트컴예술나눔 대표
거품 경제의 과속과 과잉으로 벌어진 외환위기로 1997년 IMF의 원조를 받게 되기 직전, 사업장을 정리하고 여유가 생겨서 유럽 여행을 하게 되었다. 그 전에는 업무로 밀라노와 파리를 다녀온 적은 있지만 문화예술 관람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골목골목 펼쳐지는 고색창연한 그들의 위대한 예술을 보면서 놀라웠고 많이 부러웠다. 부러워하면 지는 것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지기 싫었다. 그래서 화려하고 아름다운 궁전과 성당이 있는 도심을 벗어나 보았지만 여전히 귀족들의 아름다운 성과 우뚝 솟은 성당이 있었다. 우리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당시는 스마트 기기와 인터넷이 잘 보급되지 않아서 관광 안내 책자나 미술사 책으로 유럽의 문화예술을 공부하던 시절이었다. 낮에는 압도적인 그들의 문화예술에 충격을 받고, 저녁에 숙소로 돌아와 책을 보며 유럽과 우리나라 문화 예술을 비교하며 밤을 새웠다. “도대체, 이들이 이런 일을 하고 있을 때 우리 조상님들께서는 무엇을 하고 계셨을까?”라는 궁금증이 커져갔다. 여행을 다녀온 후, 세계와 우리나라 정치와 문화사를 비교하며 공부를 하게 되었다. 최근에, 불타버린 노트르담 대성당을 재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성당은 1163년에 착공을 해서 거의 180여 년간 시간과 물자와 온갖 예술적 재능을 총동원해서 완공했다. 12세기 말, 우리는 고려 말기였다. 지방 호족(귀족)들의 수탈로 인해서 안으로는 농민의 반란과 민란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밖으로는 몽골의 침탈이 계속되고 있었다. 왕권은 약화되고 문신은 위선적인 명분 쌓기에 매몰되고, 무신은 자기만 살겠다고 사병을 키우고 있었다. 왕조가 기울어가고 있었다. ‘권력을 탐하는 자들이 나라를 망치면 힘없는 국민이 목숨을 걸고 나라를 구한다.’는 어느 사학자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나는 시절이었다. 요즘도 그 말이 적용되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젊은 혈기로 조상님들에 대한 실망과 원망의 마음이 불끈 솟아올라왔지만 문화사와 인류학을 조금씩 공부하며, 다양한 관점에서 우리 문화와 유럽의 문화를 깊이 있게 비교할 수 있는 안목이 생겼다. 유홍준 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읽고 틈나는 대로 구석구석 답사를 다녔다. 우리 문화예술에 대한 구겨지고 쪼그라든 자존감을 회복하게 되었고, 우리 문화예술의 선진성에 대한 자랑스러운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 ‘선진성’이란 문물이 아니라 그 문물에 담긴 정신적 선진정, 문화적 선진성이다. 정신의 선진성이란 사람, 백성, 서로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을 바탕으로 하는 이해와 배려로 형성된다. 소수 권력 집단의 신념을 강요하고 지배력을 과시하기 위해 사람을 이용하거나 희생시키지 않는 것이 선진성이다. 선진성은 말로만 부르짖는 그럴듯한 캐치프레이즈가 아니다. 몸으로 행동으로 보여 증명하는 것이 선진성이다.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신 구세주께서 자신의 업적이나 위대함을 기리기 위해 그 많은 탈취와 희생으로 세워진 성당을 과연 즐겨 받으셨을까? ‘필요 없다!’하시지 않을까? 그런 건축물이 없어도 구세주는 위대한 신이시고, 왕은 종의 모습으로 백성을 섬겨도 여전히 훌륭한 왕이다. 우리의 선조들의 왕궁은 높지도 화려하지도 않고 멋진 예술작품으로 채워지지도 않았지만 권력에 대한 절제의 미덕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권력을 자랑하고 남용하여 천박으로 흐르는 극도의 사치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잔인한 수탈의 흔적도 보이지 않고 희생의 피 냄새도 나지 않는다. 문화적 선진성이란 문화 공동체와 그 구성원에 대한 바른 이해와 따뜻한 배려와 관용에서 시작된다. 반대로 공동체 구성원을 자기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취급하며, 이기적인 숨은 의도를 화려함으로 포장하는 것이 문화적 후진성이다. 권력과 부를 세력 화장을 위해 마구잡이로 휘두르고 더 나아가 불법을 자행하고 숨기려다가 들통이 나면 발뺌하고 심지어 미화하는 행태는 양심이 싹트기 이전의 동물의 상태로 되돌리는 인류학적 후진성이다.
지난여름 유럽의 발칸의 문화예술을 둘러보았다. 호화스러운 권력자들의 궁전과 예배당을 보면서 ‘이 건물을 건립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백성들의 삶이 궁핍해졌으며,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골병이 들었으며 사고로 목숨을 잃어야했을까? 신과 권력자가 사라진 자리에 오직 종교와 권력의 그림자만이 백성의 굶주림과 희생 위에 홀로 빛나는구나!’라는 생각에 허탄함이 느껴졌다. 유럽 문화예술의 미학적 예술사적 가치가 어떠하든지 간에, 더 이상 감탄하지 않게 되었다. 그 그림자 앞에 서면 언제나 이 화려한 건축, 우리가 문화예술이라 칭송하는 것들을 위해서 희생당한 힘없는 백성들과 노동자들에게 위로의 묵념을 올리는 습관이 들었다. 물론 그런 대 역사를 통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사람들도 있고, 이름을 떨친 사람도 있지만, 그 바탕에는 그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문화예술의 선진성은 어떤 희생이나 강요 위에 성립된 물적 증표에 있지 않음을 현대 예술은 증명하고 있다.
누군가는 말한다. 평택에는 지역을 대표할 만한 세계적인 걸출한 예술가도 없고 남겨진 유명한 문화유산이 빈약하다고. 평택의 문화예술과 예술가들을 폄훼하는 말처럼 들리지만 사실일 수 있다. 왜 그럴까? 걸출한 예술가는 자연처럼 그냥 저절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문화적 예술적 토양이 갖추어져야 그 싹이 발아하고 성장하여 열매를 맺는다. 과거 유럽의 정치와 종교 권력자들의 필요는 적절한 예술적 토양으로 작용했다. 평택은 예술이라는 정신성의 표현에 전념해야할 절실함이 약했을지도 모른다. 과거의 평택 사람들은 내륙에서는 농업을, 서해안에서는 어업을 기반으로 생계를 꾸리며 정치와 종교 권력과 거리를 두고 소박하게 살아왔다. 그 소박함이 만들어낸 삶의 가치를 담아낸 문화예술이 곳곳에 있을 것이다. 크고 화려한 것들에 현혹당하여 편향된 안목이 그 소박한 아름다움의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근래에 평택은 자동차, 반도체 그리고 미군이 유입되면서 급격한 양적 확장을 하고 있다. 양적 물적 확장에서 간과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정신적 가치의 빈곤이다. 현대의 예술적 토양은 사회, 즉 공동체의 정신적 필요다. 정신문화의 빈곤은 곧바로 후진성으로 연결된다. 공동체의 정체성을 선진적으로 확립해 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문화예술의 활성화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고 이해하고 소통하는 문화예술의 토양이 비옥하게 구축되지 못한다면, 물적 풍요와 편의를 확보한다고 해도 정신적 빈곤이 만들어내는 후진성은 극복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내적 갈등과 단절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 10년, 20년 후, 평택에서 세계를 아우르는 걸출한 예술가들이 출현하려면 문화예술의 활성화를 통한 정신문화의 선진화가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신은주 : 아트컴예술나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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